대놓고 하는 필터링 없는 1人 성토 글
제대로 기억도 안 나지만
언젠가는 하고 싶었던 연혁 풀이
------------------------------------------2012.03.27 15:14 작성



2006년
회원가입 제도, 운영방침을 변경했다. (세부 사항을 기억할 정도로 특별한 항목이 있지는 않다.)


2007년
창단 6주년을 맞이해서 MT를 갔다. 한 달쯤 전에 미리 예매를 마치고 기차를 타고 대성리에 갔다 왔는데 (경춘선이 뚫리기 전이다.) 창단 맴버와 활동하던 사람들은 다들 큰 기대와 들뜬 마음으로 참석했었다. (활동 뜸하던 사람이나 신입은 기억에 없으니 패스)
마냥 재미있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어디를 가나 있는 진상회원이 이때 등장한다. 그 전에도 진상 회원은 있었지만 이때가 기억에 남는 것은 게임을 하며 실수를 빙자하여 한, 두 명을 제외한 사람들에게 스킨십을 했기 때문이다. (제외된 한, 두 명은 운영자들로 기억 됨)
애당초 진상회원은 나의 적이었지만 이때부터 진정한 ‘적‘으로 간주하게 된다. (유령회원도 그다지 환영하지는 않지만 적까지는 아니다. 다만 놀러오라고 문 열어놨더니 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입 다물고 있는 포대 자루 일뿐)
이때부터 나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기게 되었다. 이름하야 ‘활동하는 100명 남기기 프로젝트!!’


2008년
드디어 사람이 아닌 단체 후원을 시작했다.
사실 사람이 사람을 후원 한다는 것은 앞서 이야기 한바와 같이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라 단체를 후원한다는 것에 상당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고 하면 돌 맞을지도 모르지만 클럽린은 이반모임이니 이반사회 내에서 자리를 굳건히 다져야 한다는 게 지론인지라 (폐쇄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정말 이제야 한 몫 한 기분이었다.


2009년
이때부터 기존 운영자가 지치기 시작한다. 사실 이전부터 지쳤지만 어떻게든, 누군가가 대신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큰 때였다. (정말 이때 내 마음은 운영자 자리에서 물러나면 1년은 사이트 로그인조차 안하리라 마음먹을 정도였다.) 운영자를 모집 할 때는 늘 그랬지만 장기간동안 공지를 올리고 모집을 하는데 이번에도 회원들의 반응은 쌩 이었다. 물론 회원들이야 “저는 못 해요~” “제가 어떻게 하나요?” 이런 마음이었겠지만 잘나서 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 성격이 활발해서 하는 것도 아닌데 운영자가 너무 오래 하니 부담이 클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한다.
활동 잘 하는 기존 회원들이 운영을 불만을 가지거나 하지 않아 주어서 한편으로는 고맙게 생각한다. “운영을 그런 식으로 밖에 못 해?”라고 한다면 아마도 나는 그 회원을 운영자로 올려놓고 (당연히 탈퇴도 못 하게 막아 놓고) 1년 동안 잘 꾸려 보라고 운영자 자리를 넘겨 줄 테니 말이다. 아.. 왠지 생각만으로도 짜릿하다. (변태냐고 묻는다면 부인은 하지 않겠다.)

이 해에 8주년 MT를 갔는데 모 회원이 직접 구운 쿠키를 예쁜 상자에 담아 참석자 전원에게 돌렸고 몇 커플이 생겨났으며 진상회원이 뭐를 어쨌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신입회원 몇 명이 상당히 개념 충만해서 뿌듯했고 운전하는 사람이 많아서 참석자 전원이 편하게 왔다 갔다 했다는 것이 엠티의 결론이다. (그때 운전한 분들 기억하고 있어요. ^^)


2010년
거의 1~2년 주기로 운영자를 추가로 뽑았지만 반년을 채우는 운영자는 두, 세 명뿐이었기에 사람들이 운영자 지원을 하건 안하건 그냥 그랬던 것 같다. ‘차기 운영자’에 대해 마음을 완전히 비우기 시작한 때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외에는 별 다른 일이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활기차고 재미있는 한해를 보냈지만 말이다.)


2011년
단체 후원하는 곳이 바뀌었다.
10주년 기념으로 MT를 갔다.
그다지 재미없었다. 아마 참석한 회원들도 재미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또 다른 운영자가 운영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해는 클럽린의 침체기였다. 운영자가 모임 추진을 안 하면 번개가 없는(회원이 번개를 처도 참여율은 저조하지만) 클럽린의 침체기는 ‘운영자의 기진맥진‘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개인인 ‘나’는 2010년에 이어서 생각의 변화도 갖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운영자’인 나는 ‘당근과 채찍‘이 필요한 상태였다. (예를 들면 퇴근해서 집에서 여유 시간을 보낼 때는 모르는데 출근만 하면 갑갑해지면서 ’이노무 회사, 때려 치지 못 해 다닌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엠티를 간 이유도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면 좋지’ 또는 ‘사람들이 엠티 가서 서로 많이 친해졌으면 좋겠다’가 아닌 ‘무엇인가를 해야 침체기를 벗어날 수 있다‘는 의무감을 빙자한 허울과 개인적으로 느낀 즐거운 기분들이 엠티에서도 이어졌으면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었기에 ’나‘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운영자인 나‘는 엠티 장소에 도착한 후부터 ’자리 마련했으니 알아서들 노세요.‘ 라는 지켜보는 자세를 취했기에 모임에 처음 온 사람들은 챙겨주는 사람도 없고 놀아주는 이도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또 다른 운영자가 사퇴했다.
힘들고 지치고 쉬고 싶어 하는지 알기에 보내줄 수밖에 없었지만, 모르는 사람은 ‘그냥 운영자가 바뀌는 것뿐이잖아’라고 할 수 있겠지만 창단 맴버이자 장시간 함께 운영한 터라 나에게는 자식들을 놔두고 떠나가는 부인(혹은 남편)을 보는 기분이었다. 종신 계약이었는데.. 노예 계약이었는데...



2012년은 아직 몇 달밖에 안 지났으니 몇 년 후에...

대놓고 하는 필터링 없는 1人 성토 글

제대로 기억도 안 나지만

언젠가는 하고 싶었던 연혁 풀이


------------------------------------------ 2012.03.24 20:07 작성




2001년

클럽린을 창단할 당시.. 약 6개월간의 고민과 그때 당시에는 90% 완벽했다고 믿고 싶은 계획을 세우고 홈페이지의 문을 열었다.

분명 처음 만들 당시에는 단순한 커뮤니티가 아닌 '오데로‘(한국성소수자센터에서 만든 이반 서치)에 이미 페이지를 찾을 수 없다고 나오는 사이트들이 많아 '사이트 개설자들과 자주 연락하는 링크사이트를 만들자'해서 만들었었다. 그때 당시의 창단 인원은 서너 명 정도이고 그중 1명 빼놓고는 지금도 린에 남아 있다.


하지만 이반이라는 주제 특성상 커뮤니티사이트 대부분이 포탈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카페로 되어 있었고 커플홈페이지의 경우 금방 문을 닫기 일쑤였기에 클럽린은 '링크제공'부분을 빼버릴 수밖에 없었다.

(1999년~2001년도에 다음 카페가 상당히 붐을 일으켰고 일부 포털에서는 무료로 홈페이지 공간을 제공했었다. 물론 이런 부가적인 기능 제공은 2002년 이후로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 이유는 네이버가 카페로 대박을 친 2002년 들어서 무료 홈페이지 공간을 제공하던 곳이 카페로 형식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클럽린이 링크제공의 형식을 고수했더라면 사용자가 줄어들 수 밖에 없던 미래가 펼쳐져 있었다고 보면 된다.)


이때는 회원제를 도입하기 이전이었기에 소통에 문제는 없었으며 창단 맴버들과는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여기까지가 2001년 9월 7일부터2002년 1/4분기까지의 일이다.




2002년 2/4분기

드디어 클럽린이 도메인을 구입하고 회원제를 도입하며 정식 사이트로 거듭나기 시작한 때이다.

이때 클럽린에서 했던 일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매거진 발행이었는데 매거진을 만들고 구독자들이 신청을 하면 이메일로 해당 매거진을 자동으로 발송해주는 시스템이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RSS구독 대행정도가 되겠다. (당시는 '메일링'서비스가 활성화 되는 시기였고 이후에 RSS기능이 보편화 되었다.)


물론 구독자가 많았던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일반 사이트에서 메일링 서비스를 하는 곳이 많았지만 이반사이트 중에서 메일링 서비스를 하는 곳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진보네트워크는 이반사이트가 아니다.)

다른 이반사이트들은 오프라인으로 소식지를 발행 하거나 온라인에서는 사이트를 만들어서 보여주었는데(이후 온라인 매거진은 블로그 형식을 띄었다.) 역시나 남들과 다른 것을 하고 싶었던지라 매거진 발행에 더 열을 올렸었다. 이제와서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때에도 오프라인 소식지에 더 흥미가 있었다. 그런데 메일 매거진을 선택한 것은 순전히 자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매거진 발행'이라는 것으로 인해 "클럽린은 인권사이트인가?" 라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었고 스스로도 '그런가?'라고 생각을 했지만 창단 당시 내걸었던 "여성이반 상위 문화 장착"(구체적으로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이라는 슬로건에 맞는 발돋움 이었다고 생각한다.

매거진 발행은 필진 부족현상으로 2005년 6월자로 근 3년간 발행하던 것을 종료했지만 매거진 발행에 참여했던 모두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다. 발행 종료이후 몇몇 다른 운영자들에게 ‘대단하다’라는 찬사를 들었다고 밝힌다면 지금에서라도 자부심을 가질까?




2003년

특별한 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연혁에 나와 있는 2주년 일일호프.. 결론만 이야기 하자면 남는 것 없는 장사였다.

당시 홍대가 물가가 비싼 편이 아니었기에 일반 라이브카페를 대관하고 (당시 대관비가 40만 얼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대문 주류상가에서 맥주와 안주 등을 구입하고 토요일 저녁 시간에 일일호프를 했었다. 

참석자가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공연도 했던 것 같고 즐겁게 놀았던 것 같다. 지금에서 다시 일일호프를 하자고 의견을 내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아마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본인이 총대를 메고 일을 추진하고 솔선수범할거 아니면 지속되지 못 할 계획은 내지도 말라고 타박하던 것이...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때부터 타 단체 후원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때에도 의견을 묵살 당한 회원이 몇이 있다. 뭐... 지금도 그렇지만 말이다.




2004년

술 먹고 흥청망청 노는 때였기에 별거 없다. 오타 수정하느라 지금 다시 보고 있는 와중에도 이때는 뭐를 했는지 기억나는 게 없다.



2005년

타 단체 후원 시작!

술 먹고 흥청망청 노는 것도 싫고 모임 할 때마다 무“뭐를 해야하나?” 생각하는 것도 싫고 해서 다른 이반커뮤니티에 하지 않았던 후원을 하면 남는 돈도 유용하게 사용 할 수 있을 테니 좋은 기회다 싶어서 시작하게 되었다. (박애주의자라서 시작 한거 아님)

이 후원으로 인해 역시나 “클럽린은 인권 사이트 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받았다. '인권사이트 표방'이라는 말이 나쁘지만은 않았고 역시나 그냥 '친목사이트'가 되기는 싫었기 때문에 그것이 클럽린의 색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여겼다. 물론 이때 당시에는 “클럽린은 무슨 색인가?”로 상당히 고민을 했었다.


'총대'에 대한 내 생각으로 의견을 묵살 당했던 회원이 이때 생겨난다. 지금도 종종 '봉사활동을 하자'는 말이 나오는데 '몇 명이 꾸준히 얼마나 지속 할 수 있을 것 같나?'라는 질문에 입을 다물곤 한다. 봉사활동을 하자는 것 자체를 나쁘게 생각하는 게 아니다. 다만 1, 2년 하고 말거라면 안하느니만 못 하다는 생각이다.

동정이건 봉사건 한가해서 건 시작하는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친구'라는 관계에서도 1, 2년 연락하다 만다면 누군가는 상처를 받듯이 봉사활동의 경우 누구 하나 상처 받고 나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친한 몇 명이서 행동을 한다고 해도 공식적으로 이야기 나온 마당에는 그것은 ‘클럽린‘이라는 이름을 걸고 하는 행동이 되는 거기에 운영자인 나로서는 클럽린의 이미지에 생길 스크래치를 생각 할 수밖에 없다. (솔직한 말로 내가 운영자가 아니라고 해도 몇 년간 몸담던 커뮤니티가 안 좋은 말을 듣거나 “거기 회원 중에 누구 있지? 그 사람은 왜 그러냐?”라는 말을 들으면 상당히 부끄럽.. 다기 보다는 쪽팔리다.)

이 애매한 마음가짐으로의 시작은 처음으로 후원하게 된 다*다 자매의 후원을 마감하는 2009년 6월 뜨뜨미지근하게 후원 종료라는 오명을 남기게 된다. (언제부터 시작하자! 라는 말은 있었지만 언제 끝내자 라는 말은 없었으므로...)


지금 생각해보면 2005년에 소통하는데 있어서 조금 삐걱거리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아직까지 잘 지내고 있으니 문제없지만)


2004년, 2005년은 개인적으로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던 때이다.

그것은 "클럽린이 인권 사이트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부터 시작했던 것인데 개인적으로 강연을 하고 어딘가에 만평을 연재 하면서부터 정점을 찍었던 것 같다. 뭐.. 결국 결론은 인권 운동가가 아니다 라는 내려졌지만 '나는 이런 사람이고 싶다'라는 그림이 확실하게 그려진 때이기도 하다.

지랄 맞을 정도로 인간 결벽증 현상을 보이는 것은 원래 성격이 그런 것도 있고 좋은 꼴 안 좋은 꼴 다 봐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운영자의 생각이나 스타일이 모임에도 나타난다는 것에 공감하기 때문에 (한 마디로 하자면 ‘끼리끼리 논다‘가 되겠다) 더욱 그러는 것 같다. 이제는 그것도 몸에 베어버렸지만 말이다.


아참, 그리고 이때가지만 해도 신입회원들을 잘 챙겨 주곤 했다. 이것에 대한 이야기와 2006년도 이야기는 다음 편에~






첨부한 약도는 문을 닫은지 한참 됐지만 한참 가던 프렌즈와 커피숍, 고기집이 있는 약도다.

이때는 정말 다들 집에 안 가고 새벽까지 놀 정도로 화기애애 하고 체력이 남달랐던 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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