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하는 필터링 없는 1人 성토 글

제대로 기억도 안 나지만

언젠가는 하고 싶었던 연혁 풀이


------------------------------------------ 2012.03.24 20:07 작성




2001년

클럽린을 창단할 당시.. 약 6개월간의 고민과 그때 당시에는 90% 완벽했다고 믿고 싶은 계획을 세우고 홈페이지의 문을 열었다.

분명 처음 만들 당시에는 단순한 커뮤니티가 아닌 '오데로‘(한국성소수자센터에서 만든 이반 서치)에 이미 페이지를 찾을 수 없다고 나오는 사이트들이 많아 '사이트 개설자들과 자주 연락하는 링크사이트를 만들자'해서 만들었었다. 그때 당시의 창단 인원은 서너 명 정도이고 그중 1명 빼놓고는 지금도 린에 남아 있다.


하지만 이반이라는 주제 특성상 커뮤니티사이트 대부분이 포탈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카페로 되어 있었고 커플홈페이지의 경우 금방 문을 닫기 일쑤였기에 클럽린은 '링크제공'부분을 빼버릴 수밖에 없었다.

(1999년~2001년도에 다음 카페가 상당히 붐을 일으켰고 일부 포털에서는 무료로 홈페이지 공간을 제공했었다. 물론 이런 부가적인 기능 제공은 2002년 이후로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 이유는 네이버가 카페로 대박을 친 2002년 들어서 무료 홈페이지 공간을 제공하던 곳이 카페로 형식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클럽린이 링크제공의 형식을 고수했더라면 사용자가 줄어들 수 밖에 없던 미래가 펼쳐져 있었다고 보면 된다.)


이때는 회원제를 도입하기 이전이었기에 소통에 문제는 없었으며 창단 맴버들과는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여기까지가 2001년 9월 7일부터2002년 1/4분기까지의 일이다.




2002년 2/4분기

드디어 클럽린이 도메인을 구입하고 회원제를 도입하며 정식 사이트로 거듭나기 시작한 때이다.

이때 클럽린에서 했던 일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매거진 발행이었는데 매거진을 만들고 구독자들이 신청을 하면 이메일로 해당 매거진을 자동으로 발송해주는 시스템이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RSS구독 대행정도가 되겠다. (당시는 '메일링'서비스가 활성화 되는 시기였고 이후에 RSS기능이 보편화 되었다.)


물론 구독자가 많았던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일반 사이트에서 메일링 서비스를 하는 곳이 많았지만 이반사이트 중에서 메일링 서비스를 하는 곳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진보네트워크는 이반사이트가 아니다.)

다른 이반사이트들은 오프라인으로 소식지를 발행 하거나 온라인에서는 사이트를 만들어서 보여주었는데(이후 온라인 매거진은 블로그 형식을 띄었다.) 역시나 남들과 다른 것을 하고 싶었던지라 매거진 발행에 더 열을 올렸었다. 이제와서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때에도 오프라인 소식지에 더 흥미가 있었다. 그런데 메일 매거진을 선택한 것은 순전히 자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매거진 발행'이라는 것으로 인해 "클럽린은 인권사이트인가?" 라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었고 스스로도 '그런가?'라고 생각을 했지만 창단 당시 내걸었던 "여성이반 상위 문화 장착"(구체적으로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이라는 슬로건에 맞는 발돋움 이었다고 생각한다.

매거진 발행은 필진 부족현상으로 2005년 6월자로 근 3년간 발행하던 것을 종료했지만 매거진 발행에 참여했던 모두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다. 발행 종료이후 몇몇 다른 운영자들에게 ‘대단하다’라는 찬사를 들었다고 밝힌다면 지금에서라도 자부심을 가질까?




2003년

특별한 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연혁에 나와 있는 2주년 일일호프.. 결론만 이야기 하자면 남는 것 없는 장사였다.

당시 홍대가 물가가 비싼 편이 아니었기에 일반 라이브카페를 대관하고 (당시 대관비가 40만 얼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대문 주류상가에서 맥주와 안주 등을 구입하고 토요일 저녁 시간에 일일호프를 했었다. 

참석자가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공연도 했던 것 같고 즐겁게 놀았던 것 같다. 지금에서 다시 일일호프를 하자고 의견을 내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아마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본인이 총대를 메고 일을 추진하고 솔선수범할거 아니면 지속되지 못 할 계획은 내지도 말라고 타박하던 것이...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때부터 타 단체 후원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때에도 의견을 묵살 당한 회원이 몇이 있다. 뭐... 지금도 그렇지만 말이다.




2004년

술 먹고 흥청망청 노는 때였기에 별거 없다. 오타 수정하느라 지금 다시 보고 있는 와중에도 이때는 뭐를 했는지 기억나는 게 없다.



2005년

타 단체 후원 시작!

술 먹고 흥청망청 노는 것도 싫고 모임 할 때마다 무“뭐를 해야하나?” 생각하는 것도 싫고 해서 다른 이반커뮤니티에 하지 않았던 후원을 하면 남는 돈도 유용하게 사용 할 수 있을 테니 좋은 기회다 싶어서 시작하게 되었다. (박애주의자라서 시작 한거 아님)

이 후원으로 인해 역시나 “클럽린은 인권 사이트 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받았다. '인권사이트 표방'이라는 말이 나쁘지만은 않았고 역시나 그냥 '친목사이트'가 되기는 싫었기 때문에 그것이 클럽린의 색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여겼다. 물론 이때 당시에는 “클럽린은 무슨 색인가?”로 상당히 고민을 했었다.


'총대'에 대한 내 생각으로 의견을 묵살 당했던 회원이 이때 생겨난다. 지금도 종종 '봉사활동을 하자'는 말이 나오는데 '몇 명이 꾸준히 얼마나 지속 할 수 있을 것 같나?'라는 질문에 입을 다물곤 한다. 봉사활동을 하자는 것 자체를 나쁘게 생각하는 게 아니다. 다만 1, 2년 하고 말거라면 안하느니만 못 하다는 생각이다.

동정이건 봉사건 한가해서 건 시작하는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친구'라는 관계에서도 1, 2년 연락하다 만다면 누군가는 상처를 받듯이 봉사활동의 경우 누구 하나 상처 받고 나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친한 몇 명이서 행동을 한다고 해도 공식적으로 이야기 나온 마당에는 그것은 ‘클럽린‘이라는 이름을 걸고 하는 행동이 되는 거기에 운영자인 나로서는 클럽린의 이미지에 생길 스크래치를 생각 할 수밖에 없다. (솔직한 말로 내가 운영자가 아니라고 해도 몇 년간 몸담던 커뮤니티가 안 좋은 말을 듣거나 “거기 회원 중에 누구 있지? 그 사람은 왜 그러냐?”라는 말을 들으면 상당히 부끄럽.. 다기 보다는 쪽팔리다.)

이 애매한 마음가짐으로의 시작은 처음으로 후원하게 된 다*다 자매의 후원을 마감하는 2009년 6월 뜨뜨미지근하게 후원 종료라는 오명을 남기게 된다. (언제부터 시작하자! 라는 말은 있었지만 언제 끝내자 라는 말은 없었으므로...)


지금 생각해보면 2005년에 소통하는데 있어서 조금 삐걱거리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아직까지 잘 지내고 있으니 문제없지만)


2004년, 2005년은 개인적으로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던 때이다.

그것은 "클럽린이 인권 사이트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부터 시작했던 것인데 개인적으로 강연을 하고 어딘가에 만평을 연재 하면서부터 정점을 찍었던 것 같다. 뭐.. 결국 결론은 인권 운동가가 아니다 라는 내려졌지만 '나는 이런 사람이고 싶다'라는 그림이 확실하게 그려진 때이기도 하다.

지랄 맞을 정도로 인간 결벽증 현상을 보이는 것은 원래 성격이 그런 것도 있고 좋은 꼴 안 좋은 꼴 다 봐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운영자의 생각이나 스타일이 모임에도 나타난다는 것에 공감하기 때문에 (한 마디로 하자면 ‘끼리끼리 논다‘가 되겠다) 더욱 그러는 것 같다. 이제는 그것도 몸에 베어버렸지만 말이다.


아참, 그리고 이때가지만 해도 신입회원들을 잘 챙겨 주곤 했다. 이것에 대한 이야기와 2006년도 이야기는 다음 편에~






첨부한 약도는 문을 닫은지 한참 됐지만 한참 가던 프렌즈와 커피숍, 고기집이 있는 약도다.

이때는 정말 다들 집에 안 가고 새벽까지 놀 정도로 화기애애 하고 체력이 남달랐던 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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